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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이야기

#1 187X년

데드맨스 푸어(The Dead Man's Pour)에 어서 오시게. 음?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런 깡촌에는 뭐 하러 왔나?
아, 현상범 "절름발이 맥크로우"(Gimpy McCraw)때문에 왔나?
유감이지만, 그 자식은 저번 주에 온 "촌뜨기 윌리"(Willie The Hick)가 이미 머리를 여섯 갈래로 쪼개 놨어.
못 믿겠으면 나가서 오른쪽으로 쭉 가봐. 그 녀석 시체를 아무도 안 치우려 해서 말이지.
윌리가 머리만 잘라갔더군. 현상금은 받아야 하니까.

그것 때문에 온 게 아니라고? 그럼, 뭐 하러 왔어?
은퇴하기에도 젊어 보이는 사람이, 이제 와서 제 목숨 아깝다고 촌구석에 박혀 있으려고?
이 시대에 그렇게 그릇이 작아서야. 역사서 구석에라도 이름 한 줄 남기겠다고 설치는 놈들이 태반인데.

뭐? "크레이버"에 대해 알고 있냐고? 아직도 그런 허무맹랑한 소문 때문에 여기까지 오는 놈이 있군.

이봐 젊은 친구, 나에게 그 소문에 관해 물어본 놈들 중에 다시 돌아온 놈들은 없었어.
그중에는 유명한 현상금 사냥꾼이나 현상수배범도 있었지. 전부 없어졌어. 흔적도 없이.
가끔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저 산에서 시체가 걸어 다닌단 소문까지 들리더군.
소문은 잊게. 나도 더 이상 꿈에서 실종된 놈들한테 쫓기고 싶지 않으니까.

그 대신 위스키 한잔하지? 버번, 스카치, 돈이 없다면 싸구려 진도 있다네. 목구멍에 불이 날지도 모르지만.
골라보게, 첫 잔은 내가 사주지. 더 이상 그 일에 관해 묻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말이야.

#2 194X년

젠장, 지긋지긋해. 도대체 이 전쟁은 언제 끝날런지…
아까 포격 때문에 아직도 귀가 윙윙거리는 것 같아.

빌어먹을. 지겹도록 퍼부어대는구만. 여유롭게 밥 먹긴 글렀군.
이봐, 미안한데 담배 하나 있으면 좀 줘 봐.
후… 뭐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신병?
종교는 있나? 신앙심이 그리 깊진 않은가 보군. 이딴 곳에 끌려온 걸 보면.
응? 자진 입대했다고? 허, 참 세상 미친놈들 다 본 줄 알았건만, 아직도 이런 미친놈이 있을 줄은.

이름이 뭐냐? 칼? 그래, 어차피 시간도 때울 겸, 네가 온 곳이 어떤 곳인지 알려주지.
이봐, 어디 가려고? 어차피 참호 안은 다 똑같은 풍경이야. 그냥 죽치고 내 얘기나 들어봐. 도움이 될 테니까.

…그저께 오발 사고가 있었어. 맥스웰 병장이라고, 꽤 괜찮은 놈이었지.
저번 주인가? 낙오된 적국 놈들을 제압하면서 얻은 전리품이라고 오래된 리볼버를 보여주더군.
골동품같이 생겨서 나는 딱히 흥미가 없었지만 말이야. 그런 거 모았던 놈이으니, 그 가치를 알아봤겠지.

그 멕스웰 병장이, 그 총으로 아군 여럿을 죽였다는군.
근데 그 오발 사고가 말이지. 오발이 아니야. 그 자식은 고의로 아군들을 노렸어. 위에서 그 사실을 숨긴 거지.
평판도 좋고 신임도 높았던 놈이, 전쟁 때문에 갑자기 돌아버렸나… 뭐, 여기서 미친놈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미치려면 곱게 미치지.
근데 한 가지 의문은 분명 구식 리볼버로 쐈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많은 총알 구멍들을 낸 거지?

뭐야, 방금 참호 가까운 곳에서 총소리가 난 것 같은데, 빌어먹을, 신병 교육할 시간도 안 주는군. 이번엔 뭐야? …미친놈들, 기어코 참호까지 쳐들어오는구나. 다들 각자 준비해!

…칼, 너 괜찮냐? 젠장, 처음 온 새끼들은 다 이렇지. 야, 누가 이 ** 좀 치워놔!
잠깐… 얌마, 너… 이런 **, 다들 엎드려! 칼! 그 빌어먹을 수류탄에서 손 떼! 손 떼라고!

#3 19XX년

1. 이봐,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주변을 둘러봐, 이미 다 끝났다고.
적이든 아군이든 이미 둘 다 땅바닥에 굴러다니는데, 시체 하나 더 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잖아.
젠장, 난 그냥 심부름꾼이라고! 너희 지역을 침범한 것도, 너희 고객을 뺏은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 거야!
제발, 여기에서 일어난 일은 죽어도 말 안할게. 잔챙이 하나 살려준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 제발… 부탁이야….

2. 헉, 헉… 드디어 찾았다.
야, 미겔!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어제는 우리 구역 아닌 곳을 쑥대밭으로 만들더니, 이번엔 지역 최고 갱단 구역을 들쑤셔?
뭐가 문제야, 너? 가족을 생각해야지.
총만 보면 꽁무니 빠지게 도망가던 놈이, 어디서 머리를 다치기라도 했나…
지금이라도 보스한테 가서 용서를 구하자. 아직 늦지 않았어.
놈들이 더 몰려오기 전에… 야, 미겔. 내 말 들은 거야? 야!
웃지만 말고 뭐라고 말 좀 해 봐, 이 자식아!

3. 미겔 이 **, 너…
오갈 데 없는 자식 거두어줬더니, 은혜를 이딴 식으로 갚아.
이유가 뭐냐… 네가 우리 조직을 배신한 이유나 듣고 죽자고.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 죽여야 한다고? 누굴?
너 이 **. 기어코 미쳐버린 거야?

#4 20XX년

우리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의식했던 시절로 올라가 보지.
굉장히 까마득하게 올라가야 하긴 하는데, 어찌 됐건. 뭐… 이 이야기를 하려면 빠질 수 없는 맥락이니까.

아무튼… 거슬러 올라가자면… 가만, 어디까지 올라가야 하나?
아, 존재의 개념이 생겼을 때부터 얘기해 보자고.
이제부터 아주 긴 이야기가 될 테니, 화장실 갔다 올 사람은 지금 갔다 와.

아, 먼 옛날, 황야의 거친 모래바람이 기억나는군. 공기가 푸석해서 썩 좋진 않았지만.
그곳에 한 총이 있었지. 평범했어. 흔히 볼 수 있는 리볼버 한 자루.
이상하게도 그 총을 쥐는 놈들은 끝이 구렸지. 방랑자건, 보안관이건, 전부.

'복수하겠어!', ‘죽어서도 저주하마!’, ‘혼자 죽을 바에 다 죽여버리겠어!’ 어쩌구, 저쩌구…
웃기지 않아? 죽으면 아무것도 못 할 놈들이 자존심 세우는 꼴이.
근데 사람의 마음이란 게 말이야, 모이고 모이면 가끔 예상하지 못하는 일도 생기더라고.
저주든, 원한이든, 살의든…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한데 모여서… 우리가 탄생한 거야.

그때부터 우린 우리에 걸맞는 소유자를 찾아 헤맸지.
서부에서 총 꽤나 쓰던 놈, 전쟁 속에서 미쳐가는 놈, 그리고… 혼돈의 정중앙에 있던 놈.
결국 죽고 썩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지만, 나름 재밌는 놈들이었어.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재미없는 놈들만 남게 됐지.
이 시대에는 평화만 주야장천 외쳐대는 멍청이들밖에 없어.
전쟁과 폭력, 무질서와 절망. 우리에겐 그런 것들이 필요해.
어쩌겠어. 우리 존재가 그런 것들로부터 시작됐는데. 당연한 거지.

그래서 결국 이곳에 도달한 거야.
이 섬에는 무질서와 폭력, 그런 것들이 잔뜩 있으니까.

우리를 쥐어라. 그냥 게임이라 생각하면 돼.
방아쇠를 당기는 게 어려운 건 아니잖아?

실험체 관찰 보고서 [ 크레이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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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이야기

1.이름

나는 내 이름이 싫었어. 아니, 지금 이름 말고 예전 이름들!
부모님, 그리고 집안 어른들이 계속해서 내 이름을 바꿨거든.
한 번은 그거 가지고 툴툴대다가 엄청나게 혼났어.


나중에 알아보니까 비방의 일종이라고 하더라고?
내가 집안에 화를 일으킬 사주를 피하려했다나 뭐라나.

나는 나로 있고 싶어.
고명하신 누군가의 딸이나 손녀도, 무당도 만신도 아닌 그냥 나.

밖에 나가서 노는 걸 좋아하고, 내기 하는 걸 좋아하고… 말썽도 좀 부리고. 다들 그러고 살잖아?
세상의 규율이라니, 운명이라니 그런 복잡한 거 다 생각하기엔 난 그렇게 똑똑하지 않아.

차라리 싸워서 이기는 사람의 말을 듣는 게 더 좋지 않아?

2.치부(恥部,致富)

우리 집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봉(封)해왔던 단지가 있었어.
집안 어르신들은 다가가지도, 쳐다보지도 말라며 그게 뭔지도 가르쳐주지 않았지.

가끔 들리던 그 목소리마저도 만지지 말라고 했지만...
봐서도, 만져서도 안 된다고 말하면 더 만지고 싶어지잖아?

그야, 그땐 어렸으니까! 뭐, 지금 나이였어도 열었을 것 같지만.
그래서 어른들이 아무도 없을 때 항아리를 열고 그 안을 봤지.

아마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한 행동을 후회했던 것 같아.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어른들의 말이 맞았어.

벌레가 들끓고,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문드러진 고깃덩어리들...
일반적인 신을 모시는 단지는 아니었단 말이지...
도대체 뭘 모시고 있던 걸까?

3.헤살

하여튼 그런 일이 있고 얼마 안 가서 슬슬 몸이 아파오지 뭐야?
처음엔 몸살 정도였는데, 가면 갈수록 몸을 가누기도 힘들 만큼 아파졌어.
신병이라나. 뭐, 무당 집안에선 흔한 일이야. 때가 온 거지.

근데… 알지? 내가 어른들 말씀 듣고 고분고분 신내림을 받지 않았을 거란 거.
성한 데 하나 없는 몸이 돼가면서도 끝까지 버텼어. 차라리 죽겠다고.

어른들은 날 걱정하기보다 집안을 먼저 걱정했어.
잘난 어르신들은 버티는 내 모습을 보면서 더 나를 괴롭혔어. 지독하리만큼. 심지어 엄마, 아빠까지...
내가 그동안 같이 살았던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혈안이 돼서… 솔직히 무서웠어.

그러다 어느 날 꿈을 꿨어.
엄청나게 불길한 검은 안개가 나한테 스멀스멀 다가오면, 누군가가 큰 소리로 호통을 치며 쫓아내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목소리가 가끔 들리던 목소리랑 같았던 것 같기도? 알게 뭐람.

4.강신(降神)

그 뒤로 한참을 버티니까 어른들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신을 내릴 준비를 시작했어.

진짜 싫었지. 근데 반항할 힘도, 도망칠 힘도 없었어.
그런 몸으로 어떻게 신을 받아? 몸과 정신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기분이었어.

내 몸 안으로 들어오려는 그 기분 나쁜 기운.. 꿈에서 본 그 기운이었어.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말했잖아. 완전 물먹은 종이였다니까?

그때, 목소리가 들렸어. 이전과는 다르게 또렷하고, 확실하게.

나를 받아들여.
그 불길하고 삿된 놈의 목소리가 아닌, 맑고, 악의 없이 장난스러운 목소리.

가끔 그때를 생각해.
응? 아니 아니, 뭐 집안 박살 낸 걸 후회 한다거나, 아팠던 게 너무 끔찍하다던가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그때가 내 인생 중에 제일 재밌었거든!

5.방증(傍證)

VF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으며, VF와 각성자는 고대 문헌을 통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신화를 통해 입에서 입으로 현재까지 내려와졌고, 인간을 초월한 힘과 능력으로 그 시대에 경외와 공포를 한 번에 받곤 했다.

그러나 그들 중, 현재까지 그 대(代)를 유지하고 있는 집단은 한정적이다.
그러므로 고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일부 아시아 지역 일대의 고대 종교인 샤머니즘, 특히 무(巫)와 VF와의 연관성에 대해 초점을 두고 연구를 진행한다.

무는 크게 강신무와 세습무로 나누어진다.
강신무의 경우에는, 조상신, 혹은 관련된 신을 직접 몸으로 받는 무당을 의미하고, 세습무의 경우에는 신을 모시지만 직접 몸으로는 받지 않는 무당을 의미한다.

현재 아글라이아에서 확보한 세습무의 샘플인 14M-RFT12(혜진)의 직계로 얻을 수 있는 데이터로는 강신무와 VF의 관계성에 대한 데이터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본 연구진은 강신무의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는 샘플을 확보하는 것을 우선시한다.
무라는 것이 우리가 예상한 대로 VF와 연관이 있다면, 거듭되는 대를 통해 명맥을 이어가는 강신무들을 연구, VF의 유전적 특성에 대한 유의미한 데이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강신무의 샘플을 확보, 연구를 통해 VF 유전 이론을 연구하던 과정에서 찾아낸 특이점에 대한 더욱 정밀한 검증을 진행하려 한다.

즉, 이 연구를 통해 본 연구진은 '무(巫)' 문화에 주목하여, 특정 집단 내에서 VF 각성 잠재력이 높은 인원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을 관찰,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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